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문단 편집) === [[소련 붕괴]] === [[소련]]에서는 사고 후 어떻게든 발전소 간판만은 내리고 싶었지만 이미 간판이며 뭐며 전부 방사성 물질에 절어 버린 뒤라서 건드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복구작업 때 쓰던 장비들도 방사능 폐기물로 버려져 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국을 수호했던 [[ISU-152]]와 같은 중자주포[* 간이 차폐형 불도저 용도로 사용하였다. 실제로는 원본의 용도 그대로 '''4호기 원전의 벽을 포격해 부수고 액화질소 파이프를 투하하려고 했으나'''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 때문에 이렇게 쓰인 것.]는 물론이요, 세계 최대의 헬리콥터 [[Mi-26]]도 전작인 Mi-6와 함께 투입되었으며 이 때 투입된 Mi-6는 대부분 폐기처리[* 프리피야트 폐차장에 [[:파일:attachment/프리피야트/b0044717_4e02b4eff2318.jpg|이렇게]] 버려져 있다.]되었으나 Mi-26은 수리 및 복구작업을 통해 재생했다고 한다. 거기다 바로 옆에는 소련에 2대밖에 없다는[* 나머지 하나는 하바롭스크 지방에 위치해 있다.] [[초지평선 레이더]]인 일명 '''"러시아 딱따구리"''' 두가-1(DUGA-1)이 위치한 비밀 기지도 있었는데 이 사고로 버려졌다.[[https://www.google.co.kr/maps/place/Duga-3/@51.3031205,30.0647547,717m/data=!3m1!1e3!4m2!3m1!1s0x0000000000000000:0x831b83ec692f3cd9!6m1!1e1|지도와 사진 보기]][* 소련은 두가 말고도 다른 종류의 미사일 감지 레이더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지만 두가는 10Hz라는 어마무시한 주파수를 내뿜고 있어서 본래 용도인 탄도미사일 감지 외에도 부가효과로 유럽 전역에 무선 통신 장애를 유발하는 재머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소련 당국은 의외의 용도에 감탄하여 이 물건을 애지중지해 유럽 국가들의 소통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한 순간에 가동이 중지되어 버리자 재밍도 불가능해졌고 사고 이후 가동이 멈춰 버리자 유럽 국가들도 이 물건의 위치를 유추해 버리게 되었다.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재밍이 사라졌으니 위치도 체르노빌 근교임을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투입된 비용이 거의 국가 예산 전체 규모에 맞먹었던 것[* 이 부분은 하나의 레토릭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당시 체르노빌 복구 비용은 3,580억 [[미국 달러|달러]]. 2011년의 [[한국]] 국가 예산을 뛰어넘긴 하지만 '''소련 GDP의 수~15% 규모'''라는 추정치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계획경제체제인 소련 경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OECD]] 국가의 예산 규모는 그 나라 GDP 대비 20~40% 선이다. (국가가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북유럽]] [[복지국가]]가 40% 이상, 복지 수준이 낮은 [[한국]]과 [[멕시코]]가 20%로 최저다.) 평균 30% 수준이다. 그렇다면 국가 예산의 절반 정도다. 이 양반이 원래 좀 쇼맨십, 과시욕이 있고 이빨을 잘 까는 것으로 유명하다.]으로 구 소련의 붕괴를 불러일으킨 결정적 요인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들인 비용에 미국과의 군비 경쟁으로 인해 소련의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났고 전전임자 [[유리 안드로포프]]의 경제 개혁은 단기 처방으로 끝난 상황이었는데 더군다나 사우디와 영미권 업체간의 치킨게임으로 인해 석유값이 폭락한 데다 쓰는 돈은 그대로인데 걷어들일 돈은 크게 준 상태에서 체르노빌 사고가 터져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게 된 바람에 소련 경제가 회생 불능에 빠졌다는 게 정설이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됐듯이 아직도 많은 지역이 방사능에 덮여 있고 50만 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하면서 그 인력들의 대부분과 인근 지역에 살았던 이들 대부분이 방사능에 피폭되었으므로 건강한 삶을 살았을 리는 만무하며 정화작업에 투입한 자원과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데 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과장이 있다고는 해도 소련 같은 대국조차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비용이 들었다. 실험 책임자 한 사람의 나태함이 전 인류에게 벗기 힘든 큰 굴레를 안겨준 셈이다. 이렇게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인한 대규모 피해와 이를 수습하는 데 혼선을 겪었고 이후에도 다른 희생양을 찾아 죄를 뒤집어씌우는 [[소련]] 당국의 태도는 소련과 [[공산주의]] 정치 체제의 실패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소련 당국이 비난 이후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정보 공개를 허용한 것이 이 사건이 부른 몇 안 되는 진보다. [[http://sonnet.egloos.com/4550214|참고]] 이 때 입은 인적, 물적 피해는 1980년대 유가 폭락, [[미국]]의 [[SDI]] 계획에 따른 군비경쟁과 함께 소련 붕괴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